자녀를 한국의 국제학교를 보내고 시간이 흘러 대학을 선택했다면, 이제 부모들은 자녀들과 이별해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학합격과 더불어 재정적인 부담감이 컸기에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큰딸과 아내와 함께 공항에 가서 짐을 부치고 함께 식사하는데 그제야 슬픈 마음이 들었다. 이런저런 당부의 말을 하는 내 목소리에 작은 떨림이 있었다. 울컥 뜨거움이 올라왔지만 잘 참았다.
아내와 딸을 미국으로 보내고 돌아와서 큰딸 방을 정리하였다. 뒤늦게서야 짐을 싸는 바람에 방 안은 폭탄 맞은 흔적이 역력했다. 방안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이제 몇 달 동안은 볼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오래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겨울 방학에는 한국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던 말이 후회됐다. 그러기에 나의 경험을 나누면서 부모가 진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려고 한다.
딸의 편지와 부모의 마음
집으로 돌아와 방안을 정리하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언니가 편지 남겼어”라며 건넨다. 빽빽하게 쓴 편지에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가득 차 있었다. 사실 부모인 내가 미안함이 더 크다. 부모의 마음은 늘 그런가 보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목메임과 눈물이 흘러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3년 전 본인이 원하던 미 동부의 한 대학에 합격해 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꼭 해보고 싶다고 해서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입학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과정을 밟아 이번에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둘째 딸이 볼까 싶어 화장실에 들어가 울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도 내가 군대 갈 때, 결혼할 때, 미국 유학을 떠날 때 그렇게 마음이 슬펐을까? 그러다 보니, 세상에 모든 부모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실제 자녀를 상실한 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려보게 되었다.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그날 새벽 잠이 오지 않았다. 계속 생각이 났다. 잘해주지 못했던 일들, 마음 이해해주지 못했던 일, 딸의 모습, 특유의 몸짓 등을 생각하니 벌써 보고 싶어진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
자녀를 군대에 보내는 일도 부모에겐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라지만, 막상 내 자식의 차례가 되면 마음이 복잡해질 것이다. 입대를 앞둔 아들을 둔 부모들은 흔히 말한다. “우리 아들은 잘할 거야.” “남자라면 다 다녀오는 거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런 말들 속에는 애써 눌러둔 걱정과 슬픔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아이를 어른의 세계로 떠나보내는 그 순간, 부모의 마음은 흔들린다. 훈련소 앞에서 마지막으로 아이를 안아줄 때, 이제는 아이 스스로가 견뎌야 할 시간이 시작된다는 걸 실감하게 될 것이다. 불편한 잠자리, 혹한의 날씨, 낯선 규율 등을 떠올리면 마음이 쓰리다. 한편으로는 이 시간을 통해 아이가 단단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엇갈리게 된다. 돌아오는 길, 조용한 차 안에서 부모들은 늘 같은 생각을 한다.
‘건강히, 무사히, 잘 지내다 오기를...’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슬픔의 끝은 어디일까? 아마도 그 끝에 가까운 자리가 있다면, 그건 사랑하는 자녀를 영영 잃은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유학, 군대 등 자녀를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도 아프지만, 그 아이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돌아올 수 없는 이별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간이 지나도, 계절이 바뀌어도, 그 공백은 그대로 남는다. 자녀를 잃은 부모에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결코 덜 아프거나 덜 그립지는 않다.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뒤, 부모는 매일 ‘그 아이가 없는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아이의 물건, 향기, 이름 하나에도 눈물이 터져버리는 시간이 끝없이 이어진다.
어떤 부모도 이런 이별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자녀와 조금 더 자주 대화하고 아래의 말들을 자주 해야 한다.
“사랑한다.”
“고맙다.”
“네가 있어 행복하다.”
“너는 내 삶의 가장 큰 선물이야.”
대학을 보내는 부모가 진짜 준비해야 할 것도 이런 것이라고 본다. 즉, 이별을 위한 마음일뿐 아니라, 미리미리 이러한 말들을 통해 하루하루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