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죽음이, 세상을 살릴 수 있다면”
1873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한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그는 살아 생전 미국 동부 철도 사업의 거물이었고, 엄청난 부를 쌓은 자수성가형 사업가였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사람들은 더 놀라운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유언장에 단 한 줄도 가족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 재산의 절반을 의과대학과 병원에,
나머지 절반을 고등 교육과 인문학 연구에 사용하길 바란다.”
그가 남긴 유산은 700만 달러. 당시 기준으로 미국 역사상 개인이 기부한 최대 금액이었다.
그의 유산으로 두 개의 기관이 동시에 태어난다.
하나는 존스 홉킨스 병원,
또 하나는 바로 존스 홉킨스 대학교.
미국 최초의 ‘리서치 유니버시티’
당시 미국의 대학은 대부분 고전교육 중심이었다.
라틴어, 신학, 철학… 유럽의 전통을 따르는 보수적인 교육.
하지만 존스 홉킨스는 **“지식을 단순히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만들어내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일의 훔볼트 모델을 참고해, 교수들이 강의뿐 아니라 연구에 매진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 이로써, 미국 최초의 **연구 중심 대학(Research University)**이 탄생한다.
📌 학생도, 교수도 “지식의 수용자”가 아닌 “창조자”가 되는 공간.
병원과 대학이 나란히 걷다
홉킨스는 단순히 대학만 세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교육"과 "의료"가 함께 갈 때 진짜 사람을 살리는 지식이 나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병원과 의과대학, 그리고 간호대학까지 한 세트로 설립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학병원 시스템"의 원형이 바로 존스 홉킨스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이곳에서 미국 최초의 여성 의사 교육, 무균 수술법, 의학연구소 설립 등이 이어지며 전 세계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간다.
유산이 만든 미래
존스 홉킨스는 자녀도, 후손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유산은 지식을 낳고, 지식은 생명을 살렸다.
오늘날 존스 홉킨스 대학교는 의학, 공공보건, 국제관계, 공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 한 장이 있었다.
“나는 죽지만,
나의 재산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일하길 바란다.”
마무리
- 존스 홉킨스는 "가문"을 남기지 않았지만, "가치를" 남겼다.
- 대학의 설립 스토리가 개인의 철학과 신념을 반영할 수 있다는 사례
- 교육 + 의료 + 연구의 삼위일체형 비전을 19세기 말에 구상했다는 놀라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