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꾼 급진적 선언
1865년은 미국 역사에서 아주 특별한 해였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났고, 노예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며, 이제 미국은 ‘전쟁 이후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시기, 뉴욕 주의 상원에 한 농부 출신 기업가가 나섰습니다.
그의 이름은 에즈라 코넬(Ezra Cornell).

그는 모스 전신기를 널리 퍼뜨리고, 통신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부를 이룬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이름을 단 대학교를 설립할 때 꿈꾼 것은 단지 명문 사립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미국 교육의 근본 틀을 바꾸고자 했습니다. 그의 선언은 당시로선 충격적이었습니다.
“나는 미국에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대학을 세우고자 한다.
누구든 들어올 수 있고,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그런 학교를 말이다.”
"Any person, any study" — 단 한 줄의 급진적 철학
코넬 대학교를 대표하는 문구,
“Any person, any study”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코넬 설립의 핵심 철학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대학들은 특정 계층, 종교, 인종, 성별에 따라 입학의 문턱을 높였습니다.
라틴어와 고전학을 중심으로 한 교육, 남성 위주의 엘리트 양성 과정, 백인 중심의 문화적 배제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코넬은 다르게 시작했습니다.
- 여성도 입학할 수 있었고,
- 유대인, 흑인, 이민자 자녀도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며,
- 철학이나 문학은 물론, 농업, 수의학, 공학, 호텔경영 등 실용적인 학문도 선택할 수 있는 학교.
이처럼 코넬대학교는 미국에서 최초로 고전과 실용, 평등과 다양성을 함께 품은 고등교육 기관이었습니다.

교육의 문턱을 낮춘, 그러나 수준은 높인 대학
에즈라 코넬과 함께 대학 설립에 참여한 **앤드루 디커슨 화이트(Andrew Dickson White)**는 당시 유럽의 대학 교육 모델, 특히 독일의 연구 중심 대학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코넬은 초창기부터 단순한 강의 중심 교육이 아닌, 연구와 실험, 창의적 사고를 중심으로 한 고등교육을 지향했습니다. 즉,
- 지식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를 길러내는 대학
- 교수들은 단지 가르치는 역할을 넘어서, 연구와 발견을 이끄는 학자로
- 학생들은 정답을 외우는 대신, 자신의 질문을 탐색하는 학습자로
이는 미국 고등교육의 큰 변화를 이끌었고, 이후 존스 홉킨스 대학과 함께 미국형 연구 중심 대학의 길을 열어갔습니다.

농민의 자녀도 철학을, 여성도 과학을
특히 주목할 점은, **“누구든지”**라는 말이 결코 상징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농부의 아들도 철학과 문학을 배울 수 있었고,
- 여학생들도 수학, 화학, 생물학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 백인 엘리트 남성 중심이었던 대학 문화에서, 다양성과 포용은 매우 이례적이었죠.

코넬대학교는 이처럼 교육의 접근성과 선택의 자유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그 가치관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넬의 오늘, 그리고 그 유산
오늘날 코넬은 아이비리그 중에서도 가장 “열려 있는” 대학으로 평가받습니다.
여전히 실용과 이상, 고전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하며 사회와 시장, 국가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 세계 최초의 호텔경영학 전공 프로그램
- 농업, 수의학, 기계공학 등 주립대 수준의 공공학문 교육과정
- 미국 내 유일하게 사립대이면서도 주정부 지원을 받는 '혼합형' 아이비리그

그리고 무엇보다, 코넬의 캠퍼스를 찾은 누구라도 이 문장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Any person, any study."
이 말은 단지 교육의 철학을 넘어,
인간에 대한 믿음과 가능성에 대한 선언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고등교육의 이상입니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기에,
배움도 똑같을 수 없습니다.코넬이 열었던 문은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의 시작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