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대학 창립 이야기
많은 이들이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같은 이름만 들어도 탄성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이들 명문 대학들도 처음엔 작은 씨앗 하나로 시작됐습니다. 그중에서도 스탠퍼드 대학은 ‘한 아이의 죽음’이라는 깊은 슬픔에서 피어난 특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종종 들은 이야기 중에 스탠퍼드 부부가 처음에 하버드대학을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전박대를 받은 부부는 스탠퍼드를 설립하게 되었고, 하버드대학 문 앞에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문구가 붙여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사실인지 살펴봅니다.
한 아이의 죽음, 한 부부의 결단
1884년, 미국의 부유한 철도 재벌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레랜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와 그의 아내 **제인 스탠퍼드(Jane Stanford)**는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을 겪습니다. 단 하나뿐인 외아들, 레랜드 스탠퍼드 주니어가 15세의 나이에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무너진 삶 속에서, 그들은 이런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제 이 아이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자녀들이 우리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은 훗날 스탠퍼드 대학의 창학정신이 됩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 – 하버드를 찾은 부부
이 즈음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대학 설립을 염두에 둔 스탠퍼드 부부가 당시 최고의 명문이었던 하버드 대학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소박한 옷차림을 본 하버드의 직원들이 그들을 하찮게 여겨 문전박대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나중에서야 하버드 측은 이들이 철도왕 스탠퍼드 부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경악하고, 뒤늦게 후회했다는 설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후세에 “기회를 놓친 하버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으로 자주 회자됩니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시대를 넘어 전해지는 전설적 각색에 가깝습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실제 스탠퍼드 부부는 하버드를 포함해 예일, MIT, 코넬, 존스홉킨스 등 여러 동부 대학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기부나 입학을 위한 방문이 아닌, 대학 설계와 운영을 배우기 위한 조사 목적이었습니다.
하버드 측의 경시나 거절이 공식적으로 문서화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설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안에 ‘편견’, ‘오판’,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보편적인 인간 드라마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한 아이를 위한 대학’이 세상을 바꾸다
1885년, 마침내 스탠퍼드 대학교는 그들의 아들 이름을 따라 설립됩니다.
“레랜드 스탠퍼드 주니어 대학교(Leland Stanford Jr. University)”
처음에는 무려 등록금도, 학비도 없었고, 동부 엘리트 대학들과는 달리 실용학문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짰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학교는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재들이 모이는 스탠퍼드 대학교로 성장했습니다.
마무리하며: 위대한 시작은, 상실에서 태어난다
스탠퍼드 대학의 설립 이야기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깊은 슬픔 속에서도, 사람은 공공의 선을 위해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고요.
그리고 때론, 누군가의 ‘차가운 응대’가 또 다른 세상을 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요.
하버드가 닫은 문 뒤에서, 새로운 문 하나가 열렸습니다.
그 문을 통해 나온 건, 단지 한 학교가 아니라, 한 시대를 바꾼 비전이었습니다.